20번 글쓰기=>*연평도 포격전* 2010년 11월 23일 오후 2시34분 시작 3시41분 종료[2025년 10월 …
작성자 최고관리자



                            20번 글쓰기=>*연평도 포격전*  2010년 11월 23일  

                                             오후 2시34분 시작  3시41분 종료

                                                          [2025년 10월 3일]

 

0.연평도 포격전 

1.날짜=>2010년 11월 23일 오후 2시 34분~~오후 3시 41분 종료 [약 67분간]

2.장소=>인천광역시 옹진군 연평면 대연평도 [북한군 포격장소=>황해남도 강령군 무도 방어대. 개머리 해안일대]

3.NLL=>Northern Limit Line [북방 한계선]

4.NLL 지정=>1953년 7월 27일 [정전 협정일] 이 후 1953년 8월 30일 마크 클라크 유엔군 사령관이 설정함


5.북한의 군사적 도발

  1] 한국전쟁 1953년7월27일 정전 협정 이후 최초의 남한 민간 거주 구역 공격사례

  2] 남한의 당시 오전부터 호국훈련 실시함 주로 남한쪽 바다를 보고 사격훈련을 실시함

  3] 북한은 호국훈련이 실질적인 침략행위라고 항의함.

  4] 북한은 이유를 불문하고 어차피 계획된 공격이었다

  5] 당시에는 중국이 아시안게임 중이였다. 중국은 *朝中 동맹조약*에 북한이 선제 공격을 당하면 개입한다.

  6] *국방정보본부*에서 3시간 전에 포사격 징후가 있다고 수사첩보 내용을 청와대와 국방장관에 보고함

  7] 북한은 약 122미리 방사포. 76.2미리 해안포 등 170발 중에서 절반은 연평도에 절반은 바다로 떨어졌다

  8] 남한에서는 북한은 약 10명이 전사하고 30명이 부상했을 것이라고 추정했다.


6.남한의 군사적 대응

  1] 남한은 K-9 자주곡사포 4문으로  반격을 개시했다

  2] 남한은 실제로 약 80발 중에서 북한의 무도에 50발 개머리쪽에 30발을 쏘았다.

  3] 남한의 *3배 대응 원칙*은 구호에 불과했다.

  4] 북한에 대응해서 최소한 500발은 퍼 부어야 한다. [연평도의 현실은 K-9도 포탄도 모두 부족했다]

  5] 남한은 해병대 2명 전사  6명 중상  10명 경상으로 확인했다

  6] 민간인은  2명 사망  3명 경상을 입었다.

 

7.북한의 연평도 포격전 평가

  1] 북한의 도발 이유는 정확하게 알려져 있지 않다

  2] 김정일이 연평도 勝戰을 통해서 김정은에게 후계 체계를 공고히 하겠다는 설도 있다.

  3] 북한은 순간적으로 F-15K 전투기와 대치하다가 MIG 23이 북으로 도주했다.

  4] 북한이 전면전을 할 생각은 없었지만 분명히 남한의 방어태세를 확인한 셈이다.

 

8.연평도 포격전 이후 연평도의 주민 인천으로 대거 이동

  1] 연평도 주민 약 900가구의 1400명 중에서 약 80%가 인천으로 피난이 시작되었다

  2] 연평도 주민이 잠시 집을 비운 사이에 절도범도 일부 있었다

  3] 남아 있는 주민은 대부분 군인과 공무원이었다

  4] 자칭 "대한민국 특수임무 수행자회" [HID]라고 지원 나온 100여명의 대원이 태극기를 들고 시가지에서

     "김정일 처단하자"라고 시위하다가 위기를 조장한다고 하자 2일 만에 떠났다

  5] 반려동물 지원단이 봉사활동을 했고 주택 약 110동이 완파.반파 또는 파손되었다

  6]  인천에 머물던 주민은 점차 연평도로 복귀하면서 정상적인 생활을 시작했다

 

9.남한의 연평도 포격전 평가와 훈장 표창

  1] 전사자 2명 [해병대 서정우 하사. 해병대 문광욱 일병은 화랑무공훈장과 1계급 특진]이 추서 되었다.

  2] 빗발치는 포격에도 목숨을 걸고 반격한 해병대원들에게는 훈포장이 수여되지 않았다

  3] 당시에 아덴만의 여명 작전시 장교 12명이 무공훈장을 받았다. 해병대사령부는 전투에서 16명이 다쳤는데

      표창이 아닌 훈장을 수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4] 해병대원 18명에게 훈포장은 10년이 지난 2021년도 수여 되면서 조용해졌다.

 

10.*연평도 포격전"추모식과 발언 논란
  1] 2012.11.23년에 1주기 추모식을 포함해서 2024년까지 14주기 추모행사를 가졌다
  2] 처음 몇년간 추모식은 3000명 내외가 참석했다
  3] 2024년 14주기 추모행사는 김계환 해병대사령관 주관으로 국립대전현충원에서 약 270명이 참석했다
  4] "서해수호의 날" 행사로 인하여 제2연평해전.천안함 피격사건.연평도 포격전 합동으로 추모행사가
      계획되어서 각각의 추모식 참배자는 줄어들고 있다
  5] 2025년 3월 28일 제10회 서해수호의 날 기념식에는 약 1500명이 참석했다
  6] 안상수 한나라당 당대표의 보온병을 들고서 탄피라고 해서 "보온병 아저씨"가 탄생했다
  7] 송영길 인천시장은 소주 한병을 들고서 "이거 완전 폭탄주에"라는 발언으로 구설수에 올랐다


0.연평도 주민의 개요
1.기준일자=>2024년도 추정
2.전체 인구=>약 2000명
3.현역군인=>1600명
  1] 해병대 군인=>1500명
  2] 육군 해군 공군=>약 100명
4.재치된 무기
  1] k-9=>18문
  2] k1 전차
  3] 기타 미사일 등


0.유족회장의 견해
1.연평도 포격전의 공격은 북한이 먼저 했지만 남한의 허술한 대응 전략이였다.
2.K-9 자주 곡사포의 수량과 정비상태 그리고 포탄의 보급품 부족을 확인한 포격전이었다
3.남한은 일단 선제공격을 하지 않으므로 대신해서 "3배 대응 원칙" 실전에서 보여주어야 한다
4.끝으로 故 서정우 하사와 故 문광욱 일병 전사에 대해서 대한민국 순직군인 유족회 일동은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작성자=>대한민국 순직군인 유족회장
작성일=>2025년 10월 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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