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번 글쓰기=>*가해자 최영오 일병* * 피해자 정방신 병장 고한규 상병* 살해사건 [1962년 7월 8일]
작성자 최고관리자

     

             28번 글쓰기=>*가해자 최영오 일병*  *피해자 정방신 병장 고한규 상병*

                                                 살해사건 육군 제15보병사단 

                                                    [1962년 7월 8일]

                                                       


0.崔永吾 일병 선임자 살해사건 

1.사건 발생일=>1962년 7월 8일 오후 12시35분

2.근무 부대=>육군 제15보병사단 무반동총 중대  제 1소대

3.부대 위치=>강원도 화천군

4.최영 죄명=>상관 살해죄

5.사망자=>정방신 병장  고한규 상병

6.최영 나이=>1938년생[24세]

7.입대일자=>1961년 08월 03일

8.총기 살인=>1962년 7월 8일 [사단 위문공연 시간에  피해 병사들 막사에서 대기 중]

9.전역 예정일=>1963년 2월 7일

10.총기 살인 동기

  1] 최일병 애인 정현숙 편지 약 12통 피해자가 먼저 무단 개봉함

  2] 편지를 개봉하고 부대원 앞에서 낭독

  3] 정병장은 중대내 서무계 편지를 가장 먼저 수령함

  4] 1962.7.4일 소원수리 시간에 편지  서신검의 문제점 제기함

  5] 중대장 피해자 불러서 경고 조치 정도

  6] 소원수리 이후 더욱더 가혹행위 심함

  7] 최일병의 서울대 문리대 천문기상학과 고학력 질투심

  8] 당시 피해자 2명은 중졸 저학력

  9] 최일병은 학보병으로 18개월 근무 후 대학에 복학하면 예비군 편입혜택

  10] 피해자 선임병들은 36개월 의무복무인데 늦게 와서 일짝 전역하는 것도 질투

  

11.총기 살해 과정

  1] M1 소총에 탄창 8발 장전 후

  2] 최일병은 평소 소유한 M1 소총으로 정병장 4발 고상병 3발 현장 즉사


11.진상조사 결과와 최종 형량

  1] 1962년 00월 00일=>1심 선고 사형 [육군 보통군법회의]

  2] 1962년 10월 19일=>2심 선고 사형 [국방부 고등군사법원]

  3] 1963년 2월 28일 =>3심 선고 상고 기각 사형 확정 

  4] 1963년 3월 18일=>사형 집행 [총살형]

    

12.구명운동 탄원서 

  1] 서울대생 학생들이 탄원서 제출

  2] 백철. 박화성.최정희 문인들도 탄원서 제출

 

13.최일병 사형 직전 최후 진술

  1] "내가 죽음으로써  우리나라 관료주의 군대가 개인의 권리를 보장해 주는 민주적인 군대가 되기를 바란다"

  2]  내 가슴에 붙은 죄수 번호를 떼어 달라. [법무관은 수락해 주었다]

  3] 어머님과 가족의 건강과 빕니다.


14. 지휘관 책임

  1] 중대장의 책임이 가장 막중하다

 

15.사망한 피해자 장병들 순직처리 과정

  1] 1계급 특진 후 국립현충원 안장

  2] 국가유공자 예

  

16.최영오 일병 사형 집행  후  일어난 사건들

  1] 피해자 2명은 각각 정하사와 고병장으로 국립현충원에 안장되었다

  2] 가해자 최일병은 훈련병으로 강등 되었다

  3] 같은 날 어머니는 시체를 찾아가라는 전보를 받는다

  4] 같은 날  밤 12시경 어머니는 고무신과 지팡이를 내려 놓고 마포대교에서 투신자살 했다

  5] 애인 정00은 자신을 원망하면서 죽는 날까지 결혼도 안하고 독신으로 살겠다고 했다

  6] 모교인 이화여대에서는 독신 소식을 듣고 문과대학에서 약학대학으로 전과해 주었다.

  7] 최일병의 남은 가족은 1987년까지 연좌제에 걸려서 20년을 넘게 용공분자로 낙인 되었다.

  8] 영화  "푸른 별 아래 잠들게 하라" [1965년 유현목 감독  최일병의 모티브 영화]

 

0.최영오 일병 사건이 남긴 교훈

1.학보병 제도 문제점=>"學籍 보유병"의 약자

  1] 1956.11.1 출범한 대학생들의 특혜제도

  2] 18개월 근무 후 전역해서 6개월 이내에 대학에 복학하면 예비군으로 편제됨

  3] 최일병 사건으로 폐기 됨

  4] 학보병 제도의 명분은 국가재건을 위해서 인재들이 일찍 전역해서 사회 일터로 나가라는 취지

      지금 생각하면 고위직 누군가 의도적으로 도입한 제도 같음 명분이 말이 안됨

2.사형수에게 수많은 탄원서를 참고하지 않은 것은 잘못된 판단이었다

3.최일병은 말했다. 연애편지 무단 개봉보다도 인간 이하의 노리개처럼 갖고 노는 잔인함에 총을 쏘았다.

4.최일병 사건 이후 계속된 군대내의 살인 사건 교훈들

  1] *군대는 뺄 수 있으면 무조건 빼야 한다" 유행

  2] *군대는 참으면 윤 일병, 못 참으면 임 병장" 유행어

     =>으면 맞아서 죽고못 참으면 무장 탈영해서 전우들을 5명 죽임 뜻

  3] ."대한민국 순직군인 유족회"가 공법단체가 되어서 

       "자랑스러운 미래장병의 생명을 위하여" 국방부의 잘못을 지적하고 

       군인권센타의 무차별 보도와 국방보안 노출을 막아야 한다.

   4] "의무복무자 장병들"과 "순직군인 유족회"국방부"의 긴급 연락망 구축

   5] "여성군인의 성폭력" "순직군인 유족회" "국방부"의 긴급 연락망 구축


     

작성자=>대한민국 순직군인 유족회장

작성일=>2026년 4월 12일